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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암정보센터

암환자 생활백서

우리들의 희망이야기

[ 직장암 ] 재가암환자지원 우수상(최일순)

암으로 힘들어하던 이들에게 국가암정보센터가 도움이 되어 삶의 희망을 찾은 이야기입니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0.06.04
[년도 : 2007] [공모자 : 최일순] [시상내역 : 우수상]

재가암환자지원부문 우수상


 


혼자가 아닌 나     




‘따르르릉~따르르릉’어느 날 아침 낯선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보건소 방문간호사입니다. 저는 퇴원하여 집에 계시는 암 환자들의 건강을 돌봐드리는 간호사예요. 제가 동사무소 사회복지사님을 통해 최일순님께서 직장암으로 힘들어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전화 드렸어요. 내일 댁으로 제가 방문해도 될까요?”


 처음에 그 전화를 받고는 보건소에서 나한테 무슨 도움을 준다는 건지, 과연 믿어도 될는지 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내일 모레 예순인 대전에 사는 장루환자입니다. 30년 전 젊은 나이에 우울증으로 한 달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었습니다. 퇴원한 후에도 어머니 집에서 5년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이를 낳지 못하는 저는 작은 아버지의 권유로 아이가 있는 집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남편과 살던 중 의처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때마다 폭력을 일삼아 결혼생활 6년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살면서 그 때가 가장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갈 곳 없는 저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는 8남매를 홀로 키우셨습니다. 어머니 홀로 8남매를 키우며 생계를 이어가다 보니 어려운 형편으로 끼니도 못 챙겨 먹고, 거르는 횟수가 많았습니다. 어려운 생활로 인한 자책과 원망으로 30년간 우울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즐거운 생활을 하며 웃으면서 살고 있지만, 옛 생각이 날 때마다 또 다시 기분이 가라앉곤 합니다. 그러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 1종이 되어 영세민 아파트에 거주하게 되었고, 제 삶에 희망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그러던 중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을 느꼈습니다. 오랫동안 변을 보지 못해 항문이 너무 아팠지만, 생활에 여유가 없어 병원 갈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한참을 미루다가 병원을 찾았는데, 진료를 받은 후 보호자가 없는 저는 의사선생님께 직접 검사결과를 듣게 되었습니다. 충격적인 검사 결과를 받게 되었는데, 바로 직장암이라는 것입니다. 그 순간 머리가 멍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수술 안 하면 죽어요?” 하니까, “예” 하더군요. 병원을 나와선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집에 와서 생각하니 꿈인가 생시인가 하며 허망한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누구하나 상의하고 의지할 사람이 없어 막막했습니다. 이럴 때 어머니라도 계셨으면 하고 생각하니,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시설에 입소하고 계셨습니다. 형제들이 있어도 다들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남남처럼 지내고 있어 누구한테도 도움을 받을 곳은 없었습니다. 


 암수술을 받고 3일 만에 의식을 찾았습니다. 정신이 들고 보니 제 옆구리에 무엇인가 붙어 있었고, 놀란 마음에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그 곳을 통해서 변을 보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순간 머리가 멍했고, 누구하나 돌봐줄 사람도 없는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니, 그저 눈물만 나왔습니다. 수술해주셨던 교수님께서 제 항문을 살리려 했지만 살리지 못했다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장루가 무엇인지, 어쩌다 피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내가, 집에서 혼자 장루를 관리해야 한다니 막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 순간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저절로 눈물이 납니다. 아픈 몸으로 누구하나 돌봐줄 이 없는 그때의 현실이 무어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고, 죽고 싶은 마음 뿐 이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다음 날, 약속했던 보건소 선생님께서 의사선생님과 함께 저희 집에 오셨습니다. 힘든 나의 상황, 내 안의 질병을 이해해주시는 그 고마운 마음에, 어느 새 나의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항암치료에 대한 두려움과 장루물품구입에 대한 경제적 부담감, 우울함을 남김없이 모두 이야기 했습니다. 사실 병원에서는 그 상황이 너무 견디기 버겁고 당황스러워, 항암치료나 장루에 대해 궁금한 것도 다 물어보지도 못하고,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보건소 선생님은 매 달 방문하셔서 내가 먹는 약이 어떤 약인지, 식생활은 어찌 해야 하는지, 귀찮을 법 한데도 매 번 자세히 일러주셨습니다. 나라에서 이렇게 도움을 주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장루물품도 지원 받을 수 있었고,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여 지금은 장루 전문가가 다 된 듯싶습니다. 보건소 선생님은 자원봉사자도 소개해주셔서 병원 갈 때에도 함께 가주시고, 무엇보다 신앙이 같아 많은 의지가 되었습니다. 


 


 교회에 얼마 동안 다니는데 꿈에 예수님께서 저를 꼭 안아주셨습니다. 그때의 포근함을 느끼고부터 제 마음이 편안해지고 ‘제게 아이가 없어 아기를 주셨구나.’라고 생각하고, 시설에 계시는 엄마와 지금은 재미있게 살고 있답니다. 장루가 우리 아기거든요. 아직도 3개월에 한 번씩 대학병원 치료를 받고 살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해주는 친구들이 많이 생긴 것 같아 행복합니다. 병원 가는 발걸음도 가볍고 즐겁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혼자라고 느낄 때 혼자가 아님을 이야기 해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소중히 간직하며, 제게 주어진 삶을 감사함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공공누리/C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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