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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암정보센터

암환자 생활백서

우리들의 희망이야기

[ 자궁경부암 ] 암환자의료비지원 우수상(김순덕)

암으로 힘들어하던 이들에게 국가암정보센터가 도움이 되어 삶의 희망을 찾은 이야기입니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0.06.04
[년도 : 2007] [공모자 : 김순덕] [시상내역 : 우수상]

암환자의료비지원부문 우수상


 


 


어머니의 강(江)


 


 


 


잠을 자다가도 엄마의 인기척에 깜짝 놀라 잠을 깨곤 한다. 엄마의 등 뒤에 매달린 가느다란 호스가 몸에서 빠져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엄마는 자궁경부암 말기로 요관 양쪽이 막혀 있어 정상적인 소변을 못 보신다. 그런 이유로 인공적으로 두 개의 콩팥에 구멍을 뚫어, 젓가락 굵기 정도의 플라스틱 호스로 소변을 배출해 낸다. 담즙주머니라 불리는 비닐봉지에 받아 쏟아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변 줄이 몸속에 단단히 걸려 있는 것이 아니어서, 긴 호스가 발에 밟히거나 조금만 당겨지면 여지없이 줄이 빠져나와 버린다. 게다가 엄마가 호스 이탈을 막기 위해 붙여놓은 테이프를 손으로 떼어 낼 경우엔 소변 줄이 이 테이프에 딸려 나온다.    


 이런 이유 말고도 엄마는 치매증이 있어 소변 줄의 심각성을 모르고, 손으로 직접 그 줄을 잡아당기거나 가위로 싹둑 잘라 나를 무척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소변 줄이 몸에서 한쪽이라도 빠지면 응급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소변이 배출되지 않아 몸에 요독이 쌓이고 미열에도 감염 위험성이 있어 무척 조심해야 한다. 그 뿐 아니라 소변 줄이 빠지면서 콩팥을 훑어 내리게 되면, 안에서 피가 나와 고이게 되어, 수혈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운이 쇠잔한 팔순의 노인인 엄마가 재시술을 받아야 하는 고통이 크다.


 그럼에도 지난 2월부터 아무리 조심을 해도 줄이 빠져 나온 것이, 어느 새 열다섯 번 정도나 된다. 엄마가 열다섯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는 말과 같다. 파란 색의 가운을 입고 힘없이 수술실 의자에 기대거나, 휠체어에 앉아 있던 엄마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그 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내가 죽어야지, 공연히 너를 고생시키는구나.” 하시며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내며 나에게 가지라고 하셨다. 그 때마다 엄마의 눈물을 보며 나도 돌아서서 울음을 참느라 한 동안 병원의 복도 끝에 숨어 울기를 몇 번이던가.  


  겨울의 끝 무렵, 늘 가슴 한 가운데 통증과 등이 아프다고 호소하시던 엄마를 동네에서 가까운 병원만 몇 군데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들른 내과에서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듣고 종합병원을 찾아 간 것이 엄마의 병을 알게 된 경위였다. 엄마는 이미 말기로 진행된 암을 앓고 계셨던 것이다. 하루만 늦게 왔어도 생명이 위독했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나는 끊임없는 죄책감에 짓눌려야만 했다. 언제나 건강하게만 보이던 엄마에게 무슨 큰 병이 있겠냐며, 십여 년간 건강진단 한 번 못 해드린 불효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죄의식에만 젖어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엄마를 즉시 입원시키고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결과는 일주일 뒤에 알게 된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일주일은 길었지만 암이란 결과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사는 컴퓨터 모니터를 보여주며 말기암이라고 설명하셨다. 내 생일에 전해들은 충격적인 결과에, 나는 한 동안 침묵했다. 하늘빛이 노랗게 몰려왔다. 누구나 자신에게는, 또 가족에게는 암이란 병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믿고 산다는데, 냉혹하게도 신은 엄마에게 엄청난 시련을 주었다. 엄마의 얼굴이 다시 보였다. 비록 힘없고 병색이 있긴 하나, 5센티미터가 넘는 악성종양이 엄마의 몸속에 있다는 사실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십여 일간의 입원 후에 엄마는 가퇴원을 했다. 병원을 나온 나는 잠시 엄마의 간호를 아들에게 맡기고 곧 바로 몇 군데 서점을 찾아다녔다. 암에 관한 책을 며칠에 걸쳐 삼십여 권 구입하였다. 책에는 여러 내용들이 가득했다. 수술을 하거나 항암치료를 하지 말라는 내용과 그 반대로 수술을 하라는 내용, 암에 관한 여러 가지 식이요법, 좋은 음식 등 머릿속이 혼미했다. 어느 책의 말을 믿고 그대로 행해야 할지 혼선이 왔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방법을 묻기 위해 국립암센터를 찾아갔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으나, 의사 선생님은 사진을 보여주며 암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남은 수명은 미지수라고 했다. 먼저 번 병원에서 엄마의 생존율이 0% 이며, 몇 개월 후면 돌아가신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진료실을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참았던 울음을 토해냈다. 그래도 아니길 바랐는데, 국내에서 암에 관한 전문 병원인 국립암센터에서 암이란 진단을 받으니 더 이상의 기적을 바란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란 암흑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엄마가 오래 살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고, 그 날부터 엄마에게 마음을 쏟아 붓기로 다짐했다.


 


 엄마는 날이 갈수록 몸이 말라가고, 작은 눈이 깊어지고 더 커져만 갔다. 세상의 아픔이 모두 들어있는 듯한 퀭한 눈빛에 초점이 흐려져 갔다. 요즘은 식사를 잘 못 하시고 구토가 심해지셨다. 밥상 앞에 앉아 있다가도 그대로 누워 버리신다. 복통을 호소하며 걷기를 힘들어하신다. 증상이 심해지면 대소변이 마구 흐른다더니, 설사가 지속되곤 한다.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아려오는 엄마에게 하는 수 없이 진통제를 드리지만 약마저 토해내신다. 목욕도 시켜드릴 수가 없다. 소변줄이 들어간 살갗에 구멍이 뚫려져 있어, 물이 몸속으로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물수건과 가벼운 샤워 물줄기로만 닦아낼 뿐이다. 엄마의 병세는 날로 깊어만 간다.


 


  이렇듯 힘든 시기에 큰 힘이 된 것이 있다. 바로 병원비의 감액이다. 암환자에게 의료비가 지원된다는 사실을 엄마의 병을 치료하면서 알게 되었다. 처음에 입원 당시 엄마의 병원비는 500만 원 정도였으나, 보험자부담금 320만 원과 본인부담금 37만 원을 환불받고 보니, 실제 병원비는 100여만 원이었다. 이후에도 수차례 소변 줄이 빠지거나 엄마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그 때마다 병원비가 120여만 원이 나오면 보험자부담금 100여만 원을 뺀 나머지 20만 원을 내고 난 후, 본인부담금 12만 원을 보건소에 영수증을 제출하여 돌려받으니, 8만  원만 낸 셈이다. 병원비 84만 원에서 보험자부담금 71만 원과 본인부담금 8만4천   원을 뺀 나머지 금액만 내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거듭되는 병원비 혜택을 여러 차례 받고 보니, 국가암관리사업이 어려운 환자와 가족들에게 얼마나 크나큰 힘이 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여기에 덧붙여 노인수발보험도 있고, 엄마의 병간호에 필요한 소독약과 거즈, 테이프 등을 보건소 방문보건센터에서 무료로 지급 받아 사용하니 치료비로 인한 마음의 부담이 거의 없다.


  


 부모의 얼마 남지 않은 생존을 눈앞에 두고 마음의 슬픔이 크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병원비에 대한 걱정이 생기는 것도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그것은 엄마에게 들어가는 병원비가 아깝다는 개념은 절대 아니지만, 돈이 없어 죽어 가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러한 생명을 살려주는 국가암관리사업이 있다는 데 대해 깊은 감사를 올리고 싶다. 그리고 이 기회를 빌려 의사선생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엄마의 진료를 받으러 가던 2007년 3월 29일, 너무도 차분하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시던 그 의사 선생님의 진솔한 표정과 걱정 어린 딸의 마음을 달래주듯, 남은 날 동안 잘 해 드리라고 당부하던 인간적인 진료가 서글픈 마음에 깊은 위안을 주었다. 또한, 암에 대해 궁금한 점을 상세히도 설명해 준 국가암정보센터에도 감사드린다. 한결같이 고마운 분들이다. 힘들고 어려운 엄마의 투병과 나의 아픈 마음들을 녹여 준 국가암정보센터와 암환자 의료비 지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부끄럽게도 지난 시월에 수원시에서 주는 ‘화성문화제 효행대상’을 받았다. 엄마께 잘 해 드린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동네에서 추천되어 효녀상을 받은 것이다. 나는 아직도 엄마에게 못 해 드린 것이 많은데 그 상을 받고 나니 마음의 죄책감이 일어 상장이 들은 액자를 보일러실 세탁기 뒤에 감춰 두었다. 엄마의 생을 다하는 날, 내가 엄마께 후회되지 않을 간호를 했다고 생각되면 떳떳이 벽에 걸어 놓을 생각이다. 


 


  엄마의 병을 알고 난 뒤로 내 책상과 식탁 위에 국가암정보센터에서 알려 준 ‘국민 암 예방 수칙’을 붙여 놓고 있다. 담배를 피우지 말고 채소와 과일을 충분하게 먹고, 음식을 짜지 않게, 탄 것 안 먹고, 술 적게 마시고 운동하고, 예방접종하고 조기검진 받으라는 등의 내용을 숙지하고 실천하고 있다.


  한낮의 해가 단감 빛 노을로 지고 있다.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노을은 산자락에 잠시 머물다가 이내 산 너머로 사라져 간다. 사라지는 노을 속으로 엄마의 흰 머리카락이 너울댄다. 이불만 깔아 놓은 듯 작아 보이는 엄마의 마른 몸이 눈에 눈물을 매달게 한다. 하지만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아들과 둘이 살아온 내겐 더 없이 소중한 엄마이기에 내 생애 온 마음을 쏟아, 엄마를 단 하루라도 더 따사로운 햇살을 받게 해 드리리라. 그리하여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이승의 강(江)을 떠나는 날, 맑고 화사한 웃음을 안고 가시기를 소망하면서…….


 

공공누리/C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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