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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암정보센터

암환자 생활백서

우리들의 희망이야기

[ 자궁내막암 ] 암환자치료비지원 우수상(신외선)

암으로 힘들어하던 이들에게 국가암정보센터가 도움이 되어 삶의 희망을 찾은 이야기입니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0.06.04
[년도 : 2006] [공모자 : 신외선] [시상내역 : 대상]

우수상 : 암환자 치료비지원


 


  


갖은 식당 일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나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몸속에 암이 있다는 것 이였다. 늘 남 일처럼만 느꼈던 암. 그것이 나의 몸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궂은 일을 견뎌내며 혼자 겨우 살림을 살아온 나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말이였다.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일을 하러 나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폐경기가 지났지만, 하혈을 하기 시작하였다. 늘 피곤하고 쉬는 날이면 하루 종일 쉬어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그저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 줄 알고 약국에 가서 이 약, 저 약 지어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증상이 더 심해져서 병원에 갔다. 초음파 검사를 받고 자궁 속에 찌꺼기가 보인다는 의사의 말에 찌꺼기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게 되었고, 그 떼어낸 찌거기로 조직검사를 하게 되었다. 별일 없을거라는 의사의 말에 크게 걱정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후, 결과가 있는 날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아 갔다.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나는 그 곳에서 암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의사는 아주 심각한 얼굴로 빨리 대학병원을 가보라고 소견서를 써 주었다.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나에게, 겨우 하루 벌어 하루 생활하기 바쁜 나에게, 이런 엄청난 시련을 주다니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이런 병명을 듣고도 당장 대학병원으로 달려갈 수 없었다. 대학병원에 가면 병원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였다.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당장 가서 속편하게 수술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였다. 몇날 며칠을 돈을 구하기 위해서 이 곳 저 곳에 연락을 해봤지만 예전에 하던 가게가 부도가 나면서 신용을 잃은 나에겐 돈을 구할 곳이 없었다. 그저 앉아서 걱정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걱정만 하면서 어떤 상태인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에게 한 가지 희망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료급여증이 나오면 병원비가 훨씬 적게 들기 때문에 검사는 받아 볼 수 있다는 것 이였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였다. 나에게는 두 명의 자식들이 있고, 소득 또한 있어서 그 자식들이 나를 부양해야하는 의무 때문에 나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가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두명의 자식들과는 10년 전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헤어져 살게 되면서 엄마 노릇도 못했는데, 그런 자식들에게 부양의 의무가 있어서 부양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담은 서류를 받아야 한다니, 정말이지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손도 써보지 못하고 암이 내 몸속에 퍼지게 될까봐 염치없는 행동이지만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동사무소 복지과 담당 직원분의 도움으로 서류를 챙겨 받고, 의료급여1종과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게 되었다. 또한 일이 처리되기 전 불우이웃 성금을 받게 되어 그 돈으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저 내 살기만 바빠서 이웃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나는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그렇지 않았다. 주위엔 따뜻한 인정이 아직도 살아있었다. 이웃들의 도움으로 대학병원에 가서 모든 검사를 받게 되었다.


  2주정도 지났을 무렵, 다시 병원을 찾았다. 병기는 아직 알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나는 다시 한번 좌절했다. 하지만 수술을 하자고 하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수술 날짜를 잡게 되었다. 이런저런 스케쥴 때문에 1달 후 수술 날짜를 잡게 되었다.


  한달이란 시간을 어떻게 기다려야할지 검사받고 기다리던 2주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지냈는데 이젠 한달이란 시간을 또 다시 기다리라는 것이다. 평소 심한 우울증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던 나는 정신과에서 약을 지어 그 약에 의존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런 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은 늘 근심걱정만이 가득했다. 자식들이 곁에 있었으면. 남편이 옆에 있었으면. 나의 이런 상황들이 원망스럽고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주위의 도움을 받으며, 나약해지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며칠 후, 동사무소 복지과 직원분의 도움으로 다행히 의료급여1종이 나왔고 병원비 부담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수술하면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부분은 다 나의 몫 이였다. 수술 날 까지 기다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사원에 등록해서 하루하루 그저 일을 나가는 것 이였다. 몸은 암 때문인지 늘 피곤하고 지쳐있었지만 수술받기 위해 일을 계속 해야했고, 나는 수술받기 전까지 이렇게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 주민 한분이 와서 암 환자에게 병원비를 한도 내에서 지원해준다는 제도가 있다고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정말이지 하늘은 다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수술 날이 다가왔다. 수술하기 이틀 전, 병원을 찾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으로 가서 입원 수속을 밟고, 입원을 하였다. 병실이 없어 2인실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나와 같은 병명인 자궁내막암으로 수술하신 분이 누워있었다. 수술한지 3일째, 아주 힘들어보였다. 생전 처음 하는 수술이라 긴장된 상태에서 그 분을 보니 더욱 떨리고, 겁이 났다. 하지만 옆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셔서 조금은 긴장이 풀렸다.


  수술 날 아침이 밝아왔다. 아침 일찍 수술 일정이 잡혀있어 이른 새벽 일어나서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링거를 꽂았다. 나도 수술을 할 수 있다니, 겁도 나지만 정말 고마운 마음이 앞섰다. 그리고 나의 수발을 들어주기 위해 이웃주민 한분이 와 주셨다. 그분의 도움으로 나는 휠체어를 타고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서있었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하면 차례대로 수술대 위에 올랐다. 곧이어 내 이름이 호명되자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였다. 수술대 위에 올랐다.


  ‘난 이제 다시 태어나는거다.’




  호흡이 너무 힘들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그저 옆에서 “크게 숨 쉬세요.”라고 외치고 있었다. 눈을 떠 보니 수술을 무사히 받고 난 후, 병실로 옮겨져 있었다. 무사히 수술을 받고 나왔구나,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옆에는 가족 대신 이웃주민이 나를 지켜봐주고 있었다. 혼자 일어나고 혼자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옆에서 가족처럼 돌봐주었다. 수술 한지 일주일이 지나서 나는 수술 결과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링거도 뽑고, 몸이 한결 가볍고 좋았다. 며칠 후, 수술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초기라는 의사의 말. 나는 그저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였다. 이렇게 긴 병원생활을 끝내고 퇴원을 하게 되었다. 수술비 때문에 걱정하며 수술도 못할 뻔 했는데, 다행히 주위의 도움을 받고 ‘암환자치료비지원사업’ 덕분에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보건복지부에서 암 치료비 지원해주는 것은 방법 또한 아주 쉬었다. 내가 사용한 영수증을 지참해서 관할 보건소에 가면 간단한 절차 후 의료비를 주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 같은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좀 더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아쉬웠다. 나는 운 좋게 주위 사람이 알려주었지만,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니였다. 이런 좋은 사업이 더욱 활성화 되고 널리 알려져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좋은 혜택을 받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같이 절망에 빠졌던 사람에게 한 가닥 희망으로, 세상에 외면 당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에게 따듯한 손길로 느껴질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앞으로는 건강한 몸으로 좀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


 

공공누리/C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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